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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지웅이 너도 잘 자.”
정효주 집은 그의 집에서 그래프사이트 도보로 10분 거리다. 정효주와 헤어진 유지웅은 그의 조그만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낡은 오피스텔과도 이제 안녕을 고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았다.

‘이왕 사는 거 좋은 집을 사야지.’
한 30억쯤 모아서 근사한 단독 주택을 살 작정이었다. 정원이 있고 수영장도 조그맣게 갖출 수 있는 곳. 괴수 출현 이후 땅값이 많이 떨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응?”
5층에 내린 유지웅은 의아했다. 그의 집 앞에 누군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여자애?’
한 17세쯤 되었을까? 자그마한 몸집에 탐스러운 갈색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고 있었다. 어깨끈이 드러나는 면티에 골반 라인이 드러나는 검은 핫팬츠를 입었다. 피부는 하얗고 깨끗했으며, 얼굴을 숙이고 있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언뜻 예쁠 것 같았다.
꿀꺽.
마른 침이 넘어갔다.
“누구세요?”

그가 부르자 여자애가 흠칫 고개를 들었다. 쪼그려 앉은 채 졸고 있었던 모양이다. 상상했던 대로 여자애는 예뻤다. 앳된 외모가 다소 흠이었지만. 그는 아직은 성숙한 여자가 좋을 20살이었으니까.
“안녕하세요? 저는 최현주라고 해요.”
“물건 안 사요.”
“물건 팔러 온 거 아니구요.”
“보험도 안 해요.”
“아이참. 그런 게 아니고요. 유지웅 씨 맞으시죠? 요새 막공 부지런히 전전하시는 힐러시잖아요.”
유지웅은 멈칫했다.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역시 힐러가 좋다니까!’
천민 딜러 시절 같았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렇게 예쁜 여자애가 집까지 찾아올 일이 어디 있겠는가? 상대의 목적을 확인하자 자연히 그의 태도가 거만해졌다.
“탱커예요?”

“아니오, 저는 딜러예요.”
딜러가 찾아왔다면 목적이야 뻔했다. 자기도 좀 레이드에 데려가 달라고 징징거리려고 왔겠지. 힐러 하나가 딜러 하나를 꽂아주면 통상 그 딜러가 받은 몫의 50% 이상을 대가로 받는다. 물론 공공연하게 하는 것은 아니고 은밀하게 이뤄진다. 힐러가 워낙 적은 관계로 현실에서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죄송한데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하면 안 될까요?”
“그렇게 하죠.”
유지웅은 최현주를 안으로 안내했다. 남자 집에는 처음 와보는지 최현주는 신기하다는 듯이 둘러보았다. 그리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무릎을 꿇고 다소곳하게 앉는 폼이 제대로 된 집안에서 자란 아이 같았다.
“레이드 때문이에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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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라면 유안이 뛰어야 했을 그래프사이트 U-17 청소년 월드컵 경기가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의 상대는 무려 브라질.
비록 유소년 축구계에서는 성인만큼 강력한 포스를 보여주지 못하는 종이 호랑이라곤 하지만,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 모든 연령/성별의 FIFA 주관 대회에서 단 한 번도 브라질을 이기지 못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덕분에 해설이나 캐스터는 시작부터 불안함을 엿보였고, 국민적인 기대감도 바닥을 쳤다.
특히나 이번 U-17 청소년 대표팀은 선수 선발부터 이래저래 논란이 많았고, 가장 관건이었던 김유안이 출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절망의 큰 원인이었다.
밤, 훈련을 마친 유안은 여동생과 함께 노트북 앞에 앉아 온라인 중계를 함께 보았다.
: 아, 도저히 못 봐주겠네.
: 내가 해도 저것보단 잘하겠다.
: 내가 이걸 왜 켰을까···? 왜 이걸 봐서 스스로 고통을 받고 있는 걸까?
: 그러게.난 잘란다.팟바-!
: 하지만 김유안이 있었다면 어떨까?
: 김!
: 유!
: 안!
비록 반쯤은 장난이라도, 채팅창에서 하나 같이 김유안을 찾고 있었다.
“후후, 보았냐.이게 오라버니다.”
덕분에 평소 남들에게는 결코 보여주지 않는 팔불출적인 모습이 잔뜩 분출되는 유안이었다.그를 움직이는 것은 팔할이 자신감이요, 나머지 이할이 자뻑이었다.
여동생은 그런 오라버니를 두고 잠시 벌레 쳐다보듯 쳐다보았으나, 도저히 부정할 수 없이 채팅창에서는 김유안 찬양 일색이었다.
특히 대표팀 공격이 허망하게 막히거나, 공격진의 실수로 상대에게 역습을 허용할 때면 더욱 더 김유안을 애타게 찾는 목소리가 늘어만 갔다.
“오빠가 대단하긴 한가봐···.사람들이 계속 오빠 이름만 부르네.”

유안은 끄덕끄덕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인 뒤, 동생을 채근했다.
“너 여기 아이디 있지? 어서 이렇게 써.‘김유안이었다면 달랐을 것이다.’”
“···으엑, 그게 뭐야.그렇게까지 자화자찬 하고 싶어?”
“응.내가 왜 축구를 했다고 생각해?”
오랜 기간은 아니었으나, 자신의 머리 위에 누구도 없다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절대자의 권좌까지 올랐던 그다.
월드컵 때 대표팀의 경기가, 보고 있는 이로 하여금 화딱지 날 정도의 축구만 아니었다면 어쩌면 그는 지금쯤 수시 결과를 기다리며 수능을 준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디보자, ‘김유안이었다면 달랐···.’”
여동생이 한 글자, 한 글자 정성들여 여론조작에 힘쓰는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아! 김주호 선수, 좋습니다! 순식간에 히바우두를 제치며 단독 드리블! 굉장히 날카로운 공격입니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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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그래프사이트 벅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의 논리 비약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실상을 떠올려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대한민국에 병역 특례를 받고 싶은 축구 선수가 많다고는 하나, 해외에서 국위선양을 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이는 선수는 극히 드물다.
청소년이 아니라 성인까지 쳐도 많이 꼽아야 열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해외에서 이름을 쩌렁쩌렁 울리는 김유안 같은 선수를 뽑지 않는다면, 감독부터 시작하여 협회까지 여론의 십자포화 같은 비난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리그컵 32강이라는 명분 역시 상당히 훌륭한 명분이 아니던가.
아무런 명분 없이 차출을 거부한다면 국민적 반감 여론이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소속 팀의 명운이 걸린 리그컵 문제라면 아무리 그래도 많은 이들이 이해해줄 수 있을 것이다.
“···정말로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벅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는 유안의 운명이 걸린 일인지도 모르는 중대한 문제였다.
[햄리츠 유나이티드, 김유안 선수 차출 거부!]
[출항부터 암초를 만난 송주영 호, 김유안 선수의 대체재는 있는가?]
유안의 말대로였다.
벅이 우려하던 만큼의 비난은 없었고, 대부분의 경우 약간의 실망이 전부였다.
애초에 선수 본인의 거부도 아닌 소속팀의 거부라는 그림이니, 유안에 대한 비난은 핀트가 어긋난 것이었다.
유안의 문제가 해결되며 햄리츠 유나이티드는 10월 리그와 리그컵도 차질 없이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TJ가 별다른 문제 없이 복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 높은 영광을 위해, 햄리츠는 계속해서 나아간다.

유안의 차출 금지, TJ 데이먼의 문제없는 복귀, 이와 같은 호재 속에서 햄리츠의 10월 성적은 훌륭했다.
특히나 아직 시즌 초반이긴 해도 ‘출장 경기 전체’에서 1득점 이상 씩 꾸준히 올린 유안의 기록은 엄청나게 진귀한 것으로,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대단한 일이었다.
애초에 득점 자체가 타 리그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리그이니, 유안의 시원시원한 득점력은 햄리츠의 인기 상승으로 귀결되는 것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유안은 고작 시즌 3개월이 지나는 시점에서 리그 10골 3어시스트.
리그컵의 경우, 6골 1어시스트로 양쪽 모두 압도적인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나 호재인 것은, 10일 올드햄 애틀란틱과의 리그전에서 TJ가 2골이나 연속으로 터트리며 리그 6골로 2위를 차지했다는 점이다.